영화 'F1 더무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F1의 언더독 스토리
- 글 컴퓨터공학부 2 임태빈
- 편집 항공우주공학과 2 임채민

F1 더무비: 가슴뛰는 언더독의 우승 스토리
영화 'F1 더 무비'는 최하위권 팀 'APXGP'와 노장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의 감동적인 우승 스토리를 그리며 많은 관객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APXGP 팀은 레이서의 꺾이지 않는 열정과 엔지니어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만나 불가능해 보였던 반전을 만들어냅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에 열광하면서도, 공대생으로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현실에서도 단 하나의 기술로 F1의 거대한 강팀들을 무너뜨리는 일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F1의 역사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공학적 기술로 판도를 뒤집은 '언더독'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화가 보여준 감동의 이면에는, 국제 자동차 연맹 FIA1) 기술 규정집의 허점을 파고들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비밀 병기를 만들어 낸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숨어있습니다.
현실판 'F1 더 무비': 2009년 브라운 GP의 우승 스토리
영화 속 APXGP와 가장 비슷한 사례로 2009년의 브라운 GP가 있습니다. 2008년 말, 세계를 덮친 경제 위기로 '혼다'는 F1 철수를 결정했고, 팀의 감독이었던 로스 브론이 단돈 1파운드에 기적적으로 팀을 인수했습니다. 그러나 스폰서도, 기술을 검증할 테스트 시간도 턱없이 부족한 그들은 최약체 팀으로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고, 아무도 이 팀에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비장의 무기, '더블 데커 디퓨저(Double Decker Diffuser)'가 있었습니다.
2009년 F1 기술 규정은 추월을 쉽게 하기 위해 차체의 공기역학적 설계를 대폭 단순화했습니다. 차체 날개 축소 등 규제 강화로 인해 차량을 아래로 눌러 접지력을 높이는 힘인 다운포스(Downforce)가 차체 상부에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부족해진 다운포스를 회복하기 위해 차체 하부의 디퓨저가 더욱 중요해졌고, 브라운 GP의 엔지니어들은 바로 이 디퓨저 규정의 허점을 발견했습니다. 차량 바로 아래에서 보았을 때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더 높은 구조물을 설치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이용해, 디퓨저를 2층 구조로 설계한 것입니다.
다운포스(Downforce)와 디퓨저(Diffuser): F1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
먼저 다운포스와 디퓨저에 대해 살펴보아야겠죠? F1 차량이 고속으로 달리면, 공기가 차체 위와 아래로 갈라져 흐릅니다. 이때 차량의 바닥은 트랙과 매우 가깝게 설계되어 있어, 이 좁은 공간을 통과하기 위해서 공기의 속도가 매우 빨라집니다. 이때, 베르누이 원리에 따라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지고, 속도가 느려지면 압력이 높아집니다. 즉,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의 바닥은 상부에 비해 저기압 상태가 됩니다. 이 압력 차이로 인해, 차체 위의 공기가 차를 아래로 누르는 힘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다운포스입니다. 마치 비행기 날개를 뒤집어 양력을 반대로 받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죠!
이 힘은 F1 머신이 트랙에 잘 붙어있도록 도와주어 타이어의 접지력을 극대화하고, 엄청난 속도로 코너를 돌 수 있게 해줍니다. (다운포스와 접지력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공대상상 46호 '공대생의 눈으로 영화보기: 그란 투리스모2)'편을 참고해주세요!)


그렇다면 디퓨저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디퓨저는 차량 맨 뒤쪽 바닥에서 위로 경사지게 솟아오른 공기 배출구입니다. 차량이 고속으로 달리면 공기는 차량 바닥의 좁은 통로를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 빠른 공기가 디퓨저에 도달하게 되면 급격한 팽창이 일어나고, 디퓨저 부분의 기압이 급격히 낮아지게 됩니다. 이 낮은 기압은 마치 진공청소기가 진공 상태를 만들어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좁은 구간에 있는 공기를 끌어당기는 힘을 만듭니다. 즉, 디퓨저라는 배출 펌프가 차량 바닥의 공기를 밖으로 뽑아내어 차량 하부의 압력을 낮추고 다운포스를 생성하는 것이죠.
FIA 규정과 '더블 데커'의 결정적 차이
이제 다시 FIA 규정을 살펴봅시다. 2009년 F1 기술 규정은 추월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기존 F1 차량들은 차체 상부에 복잡하고 거대한 윙들을 달아 엄청난 다운포스를 만들었습니다. 이 다운포스로 차량 자체의 코너링 속도는 엄청났지만, 문제는 추월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뒤따르는 차량은 앞차의 거대한 윙이 만들어내는 '더티 에어(Dirty Air)'에 노출되어 다운포스가 감소되었고 추월의 난도는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2009년 규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량 상부의 공기역학 설계를 대폭 단순화했습니다. 또한 줄어든 다운포스를 만회하기 위해 팀들이 차체 하부 디퓨저를 과도하게 활용할 것을 우려하여, 디퓨저의 크기와 위치까지 엄격하게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운 GP는 디퓨저에 관한 기술 규정 제3.12.7조에서 빈틈을 찾았습니다.
"차량의 바로 아래에서 보았을 때(which is visible from beneath the car), 뒤 차축 중심선과 그 뒤쪽 350mm 지점 사이에 위치하는 차체는 기준면으로부터 175mm보다 높을 수 없다."


대부분의 팀은 이 규정을 디퓨저의 최대 높이를 175mm로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브라운 GP의 엔지니어들은 "차량의 바로 아래에서 보았을 때"라는 문구에 집중했습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차량 바로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175mm보다 높은 구조물을 설치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더블 데커 디퓨저'는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이 원리를 극대화했습니다. 브라운 GP 엔지니어들은 위 그림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처럼, 차량 바닥의 기준면과 그보다 약간 높은 계단면 사이에 있는 구멍을 활용했습니다. 이 구멍을 통해 공기가 디퓨저 상단에 위치한 두 번째 층(deck)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이 구조는 디퓨저의 외형적인 규제 높이를 지키면서도, 실질적으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면적을 훨씬 더 크게 확장하는 효과를 내었고, 막대한 다운포스를 생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작은 아이디어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른 팀들이 줄어든 다운포스로 고전하는 사이, 브라운 GP의 F1 머신은 압도적인 접지력과 코너링 성능을 뽐냈습니다. 그 결과, 개막 후 7경기 중 6경기를 휩쓸었죠. 최약체 팀으로 여겨졌던 브라운 GP는 이 기술적 돌파구를 통해 창단 첫해에 드라이버와 팀 챔피언을 모두 석권하는 F1 역사상 전무후무한 동화를 완성했습니다.
'더티 에어(Dirty Air)'의 근원: 그라운드 이펙트(Ground Effect) 시대의 명과 암
다시 영화로 돌아와 APXGP 팀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F1에 복귀한 노장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는 첫 레이스 중 앞차를 바짝 뒤쫓을 때마다 차량이 심하게 불안정해지는 현상을 겪습니다. 그는 무전을 통해 "차량이 불안정해!"라고 외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앞서 소개했던 '더티 에어'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한 더티 에어는 F1의 오랜 난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더티 에어 문제는 언제부터 중요해졌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제는 과거 F1을 지배했던 가장 강력한 공기역학 기술인 그라운드 이펙트가 안전 문제로 금지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심화되었습니다.
F1카를 땅에 '빨아들이는' 그라운드 이펙트(Ground Effect)
F1 차량의 접지력, 즉 다운포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전부터 다양한 기술이 시도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혁명적이었던 것이 바로 그라운드 이펙트입니다. 1970년대 후반, 로터스 팀의 엔지니어들은 앞서 소개한 베르누이 원리를 활용하여 차량의 바닥 전체를 거대한 '뒤집힌 비행기 날개'처럼 설계했습니다. 이는 마치 차량 하부 전체를 초대형 디퓨저로 사용하는 설계와 같았습니다. 차량의 아랫부분을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는 형태로 만들고, 이 좁은 통로를 지나는 공기 속도를 폭발적으로 가속시켰습니다.


이때, 현대 F1 차량의 별도의 통로를 가진 디퓨저와 달리 차량 하부 전체를 활용하는 그라운드 이펙트 기술은 차량 하부에 형성된 강력한 저압 지대의 밀폐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로터스 팀은 차량 측면에 지면과 거의 닿는 '슬라이딩 스커트(Sliding Skirts)'를 장착했습니다. 이 스커트가 차체 바닥의 저압 지대를 외부의 고압 공기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하면서, 다운포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었습니다.
로터스 팀은 이 기술이 적용된 F1 머신으로 1978년 시즌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며 챔피언십을 차지했습니다. F1 카가 마치 자석처럼 트랙에 달라붙어 코너를 휙휙 돌아나가는 모습은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라운드 이펙트의 금지와 '더티 에어'의 등장
하지만 그라운드 이펙트 기술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전 문제였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그라운드 이펙트의 압도적인 성능은 슬라이딩 스커트의 완벽한 밀폐 능력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 밀폐가 깨지는 순간이 문제였습니다. 만약 연석을 밟거나 스커트가 파손되어 순간적으로 차체 하부의 밀폐가 깨지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진공청소기의 노즐이 열려 버리듯, 강력했던 다운포스가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차량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접지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드라이버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더불어 너무 강한 다운포스도 문제였습니다. 고속으로 달릴 때, 공기역학적 힘이 서스펜션3)을 강하게 눌렀다가 다시 돌고래(porpoise)처럼 튀어 오르는 '포퍼싱(porpoising)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차량이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드라이버는 심한 진동과 충격에 시달렸고, 이는 시야 방해와 함께 극심한 피로감을 주어 사고 위험을 더욱 높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1980년대 초반에는 그라운드 이펙트 차량과 관련된 대형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고, 심지어 드라이버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비극까지 발생했습니다. FIA는 더 이상 안전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고, 1983년부터 모든 F1 차량의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플랫 바텀(Flat Bottom)' 규정을 도입하며 그라운드 이펙트 시대를 강제로 마감시켰습니다.



이 규제는 그라운드 이펙트의 위험성을 제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공기역학적 문제를 낳았습니다. 강력한 다운포스를 생성하던 그라운드 이펙트가 사라지자, 팀들은 잃어버린 다운포스를 만회하기 위해 차량 앞쪽의 날개인 프런트 윙(Front Wing)과 후미에 있는 리어 윙(Rear Wing)의 크기를 점점 더 키우고 복잡하게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크고 복잡해진 윙들은 차량 뒤쪽에 극심한 난기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더티 에어(Dirty Air)'라고 부르는 현상의 시작이었습니다. 앞서가는 차량이 만들어내는 이 더티 에어는 뒤따르는 차량의 공기역학적 성능을 심각하게 저하시켜, 다운포스를 잃게 만들고 차량을 불안정하게 했습니다. 마치 앞차가 거대한 선풍기로 뒤차에 모래 폭풍을 날리는 것과 같았죠. 이 때문에 뒤따르는 차량은 앞차에 바짝 붙어 추월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졌고, F1 레이스의 박진감을 떨어뜨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즉, 영화 속 소니 헤이스의 앞을 막은 더티 에어 문제는 수십 년 전, F1이 안전을 위해 그라운드 이펙트를 금지하면서 발생한 예기치 않은 나비효과였던 셈입니다.
여러분의 트랙 위, 끝나지 않는 드라마
영화 'F1 더 무비'는 노장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와 최하위 팀 APXGP가 온갖 역경 속에서 공학적 돌파구와 완벽한 팀워크, 그리고 인간적인 드라마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립니다. F1은 단순히 빠르고 화려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첨단 공학과 끊임없는 기술 개발, 그리고 규정 해석을 둘러싼 치열한 두뇌 싸움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 소니 헤이스가 "돈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 F1이라는 무대로 돌아왔던 것처럼, 독자 여러분들도 가슴 뛰는 꿈과 도전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열정으로 완성될 여러분만의 기적은, F1 트랙 위의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인 스토리일 테니까요!
참고
- 1) 포뮬러 1(F1) 등 모터스포츠의 주관 단체이며, F1 경기의 규정집을 제정 및 관리한다.
- 2) 공대상상 46호 '공대생의 눈으로 영화보기: 그란 투리스모편'
- 3) 차량과 바퀴 사이에 장착되어 노면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로, 주로 스프링과 충격 흡수 장치로 구성된다.
그림 출처
- 그림1. https://www.apple.com/tv-pr/originals/f1/images/
- 그림2. https://medium.com/@darienjy5056/will-cfd-technology-shape-the-next-era-of-f1-aerodynamics-6b39b9a3820b
- 그림3. https://scarbsf1.wordpress.com/2011/03/22/floors-and-diffusers-the-basics-explained/
- 그림4. https://jaapgrolleman.com/diffusers-toothbrushes/
- 그림5. https://scarbsf1.wordpress.com/2011/03/22/floors-and-diffusers-the-basics-explained/
- 그림6. https://medium.com/formula-one-forever/grounded-the-end-of-f1s-first-ground-effect-era-and-what-it-could-tell-us-about-2026-d0e53f082207
- 그림7. https://www.theautopian.com/how-lotus-revolutionized-formula-1-with-ground-effect-aerodynamics/
- 그림8. https://www.reddit.com/r/formula1/comments/zf3hmu/changing_front_wings_200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