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만들어내는 패션

본문

투명 핸드폰 케이스를 오래 썼더니 노랗게 변색돼버린 경험 다들 한번쯤 있으시죠? 누구나 꺼리는 이러한 변색 현상을, 오히려 패션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실, 알고 계셨나요? "자연을 담은 패션"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지용 디자이너의 브랜드 JiyongKim입니다. 이들은 패션계에 지금까지 없었던 기법인 Sun-Bleach 기법을 도입하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Sun-Bleach 기법은 옷 또는 옷의 원단을 자연광에 오랜 기간 두어 의도적으로 변색시키고 무늬를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외선에 의한 탈색, 바람과 비에 의한 풍화를 거치게 되고, 그 결과 독특한 무늬를 갖는 옷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또한 해당 디자인 기법은 굉장히 자연 친화적이기에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JiyongKim은 이러한 독창성을 인정받아 패션 관련 상을 다수 받게 되었습니다. 수상 인터뷰에서 김지용 디자이너는 제품 디자인 과정에서, 결과를 의도하고 햇빛 아래 둘 때도 있고,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자외선에 노출된 섬유의 색 변화는 어떻게 예측해볼 수 있을까요? 이번 기사에서는 패션에 숨어 있는 공학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1 Sun-Bleach 기법이 적용된 옷
그림2 Sun-Bleach 기법으로 일부만 변색된 섬유
그림3 구조 변화로 색이 변한 Azo dye

우선, 변색 원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겪을 수 있는 변색 현상 뒤에는 자외선이라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변색은 자외선이 물질 내 전자와 반응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자외선은 고에너지 전자기파이기 때문에 물질에 흡수되었을 때 전자를 들뜨게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물질의 분자구조가 바뀌기도 합니다. 화학결합을 끊어버리거나, 전자의 위치를 이동시켜 색상이 다른 물질로 바꾸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외선은 변색을 일으킵니다. 자외선으로 인한 색상 변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Azo dye의 변색이 있습니다. Azo dye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산업 염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물질입니다. 그림과 같이 구조상 질소의 이중결합을 가지고 있으며, 해당 부분으로 인하여 염료 특유의 색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Azo dye는 자외선을 받으면 전도띠에서 전자와 양공이 생성됩니다. 이렇게 생성된 전자와 양공이 일련의 화학반응을 거치면서 화학구조가 변하게 되고, 질소의 이중결합이 끊어져 기존과 다른 색상을 나타내게 됩니다. 또한, 외부 물질과 반응으로 구조가 변하며 색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림4 Xenon-Arc Testing 장비 평면형(좌) 회전형(우)

그렇다면, 관련된 공학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는 빛으로 인한 변색 결과를 확인하는 기술인 제논 아크 내후성1) 테스트(Xenon-Arc Testing)입니다. 해당 방식은 광원으로 제논 아크 램프를 이용합니다. 고압의 제논 가스에 아크 방전2)을 가하게 되면, 다양한 파장의 빛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태양광과 유사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이렇게 인공적으로 생성한 빛을 섬유에 조사하면, 섬유를 실외에 두지 않고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5 제논 아크 내후성 테스트 이후 일부만 변색된 섬유

또한, 장비 내부의 다양한 광 필터를 이용하여 원하는 파장만을 내보내거나 원하는 특정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Window Glass 필터를 사용하면, 320~720nm 범위의 빛을 투과시켜 유리창이 있는 실내 환경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필터의 종류도 다양해서, 필요에 따라 파장 외에 광 강도, 복사 온도, 상대 습도, 수분 노출, 어둠 주기 등 다양한 변수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즉, 광 필터를 활용하면 장비 속에 원하는 조건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물질에 일어날 반응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빛에 노출된 물질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다양한 지표를 이용해 평가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지표에는 ISO 105-B02가 있습니다. 이는 Grey Scale이라 불리는 척도를 이용, 시험에 따른 색상 변화를 정량화해 등급을 매기는 방식입니다. ISO 105-B02 지표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지표이기에 제논 아크 내후성 테스트의 신뢰도가 굉장히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6 UV 가속 노출 시험기

둘째 방식은 빛에 대한 섬유 강도를 평가하는 UV 가속 노출 시험입니다. 기본적인 구조와 원리는 제논 아크 내후성 테스트와 유사하지만, 시험에 사용하는 빛의 파장이 자외선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시험 장비는 UV 자외선 램프와, 증기를 만들어내는 가열 히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각각 빛과 습기에 의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섬유 파괴가 자외선 때문에 발생하기에,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섬유 파괴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샘플을 제작하거나 간단한 실험 결과를 확인할 때 주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제논 아크 내후성 테스트가 다양한 범위의 파장 및 다양한 필터를 사용하기에 실제 환경의 유사도와 결과의 신뢰도가 더 높아 정밀한 측정에서는 UV 가속 노출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UV를 쪼인 시간에 비례해 색이 변색되기 때문에 결과를 금방 예측할 수 있겠네요?'라는 생각이 여기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섬유는 시간에 비례하여 내구도가 감소하지 않기에 실제 장비를 사용할 때는 장기적인 분석이 이루어집니다. 비교적 장기적인 분석을 하는 이유는 소재와 섬유의 흥미로운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UV 노출 시 나일론 소재의 내구성을 확인한 최근 실험에서, 섬유 소재가 UV 조사에 따라 단순하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연구진은 UV로 인해 초기에는 분자들이 끊어지지만, 끊어진 분자에서 생겨난 라디칼3)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끊어진 결합이 회복된 이후, 다시 내구도가 감소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즉, 어떤 소재들은 일조량에 단순 비례하여 내구도가 감소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내구도 확인 실험에서 소재의 새로운 특성을 알아낼 수 있기에 UV 가속 노출 실험은 새로운 섬유 소재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섬유가 빛을 받았을 때 변색되는 현상을 관찰하기 위한 기술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옷을 파괴하는 행위로 인식되었던 변색 과정을 옷을 생산하는 행위로 승화한 결과, Sun-Bleach 기법과 같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발상의 전환을 한 결과,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기법이 패션계에 생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공학과 패션의 협업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렇듯, 공학과 패션은 계속해서 긴밀히 합작하여 새로운 생산 방식과 소재를 개발해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소재,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소재, 3D 프린팅 소재 등 최신 공학 기술을 적용한 패션 소재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첨단 공학 기술이 만들어낼 새로운 패션의 세계가 기대되지 않나요?

참고
  • 1) 내후성: 어떤 물질이 온도, 습도, 빛과 같은 외부 요인에 대한 저항력을 갖는 것
  • 2) 아크 방전: 전극에 높은 전압을 가할 때 전극 사이의 기체가 파괴되며 밝은 빛을 내는 현상
  • 3) 라디칼(Radical): 하나 이상의 홀전자를 가지는 원자 또는 분자로, 주로 공유결합이 끊어지면서 생성됨.
참고 문헌
그림 출처
지난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