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차가워!
에어컨이 차가운 이유
- 글 재료공학부 3 김종흔
- 편집 건설환경공학부 4 조한기
서문
옛말에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덕목으로 삼은 말인데요, 공학자 윌리스 캐리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에어컨을 발명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에어컨은 어떻게 차가운 바람을 뿜을 수 있을까요?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장치입니다. 사람은 세탁기가 없어도 빨래를 할 수 있고, 가스레인지와 진공청소기가 없어도 요리와 청소를 할 수 있죠. 하지만 에어컨은 다릅니다. 부채질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여름밤을 쾌적하게 보내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에어컨의 발명으로 인류 삶의 질은 명백하게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경제까지 바꿨죠. 더운 지역의 실내 활동 능률과 식품 보존성을 크게 높여 자원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요즘에 떠오르는 슈퍼 컴퓨터와 서버도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죠.
그런데 이 에어컨이 역설적으로 지구 온난화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공학자들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냉각 기술을 찾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선 차갑게 만드는 기술, 냉각의 원리와 차세대 냉매에 대해 알아봅시다!
에어컨의 작동 과정

작동 중인 에어컨 속 냉매를 따라가봅시다. 액체인 냉매는 실내 에어컨 속 증발기에 도달해 기체로 증발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므로 차가운 바람이 에어컨에서 나오게 됩니다. 기체가 된 냉매는 계속 파이프를 타고 이동하며 압축기에 도달하는데요, 압축기는 기체 냉매를 압축해 액체로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냉매는 심지어 여름날 실외 온도보다 뜨거워집니다. 너무 뜨거워진 냉매는 외부 실외기에서 바람을 맞으며 식습니다. 그리곤 다시 실내 에어컨 속 증발기로 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하죠.
에어컨을 만들어 봅시다!
에어컨의 원리를 설명하기 전에 우리가 윌리스 캐리어처럼 에어컨을 만들고 싶은 엔지니어라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주변을 차갑게 만드는 물질을 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차가운 물질부터 시작해보죠. 어떤 물질이 있을까요? 저는 얼음이 떠오르는데요, 얼음은 주변을 차갑게 만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원리를 알기 위해선 물질의 '상(phase)'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은 여러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이 수증기와 얼음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일반적으로 물질이 한 상에서 다른 상으로 변화할 때는 열 에너지도 함께 출입합니다.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병원에서 주사를 맞기 전에 알코올을 바른 곳 주변이 시원해지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이는 알코올이 액체 상에서 기체 상으로 바뀌며 주변의 열을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은 수준에서, 이런 현상은 '무질서도(엔트로피)' 개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물질의 상이 변해 무질서도가 증가할 때 물질은 주변의 열을 흡수합니다. 앞선 예시도 알코올이 액체 상태로 모여있는 것보단 기체 상태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더 무질서하기에 상 변화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자연 현상을 응용해 물체의 상을 변환하는 장치를 만든다면, 주변의 온도를 마음대로 낮추고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온도를 바꿀 방법을 알아냈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입니다. 실내에서 물질 주변이 차가워지며 내부에서 제거됐다고 생각한 열 에너지는 사실 물체의 '상 변환 에너지'로 형태만 바뀌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냉각을 바란다면, 외부와 에너지 교환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림2]처럼 우리가 차갑게 만들고 싶은 곳에서 물체의 상을 바꿔 온도를 낮추고, 외부로 이동해서 물체의 상을 다시 바꿔 뜨거워진 물체를 바깥의 바람에 식히는 과정을 반복한다면 지속적인 냉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어컨은 [그림2]에서 사람의 역할을 냉매와 파이프로 대체한 장치입니다. 냉매가 실내, 실외를 왕복하며 상 변화를 이용해 실내의 열 에너지를 바깥으로 퍼나릅니다.
바로 이 냉매가 에어컨의 성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냉매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압축에 필요한 압력, 상 변화로 흡수하는 열의 양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죠. 환경오염 측면에서도 냉각 장치 속 냉매가 관심 대상입니다. 과거에 냉매로 많이 사용된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몰려, 끝내 사용이 금지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죠. 지금은 R-22와 같이 수소(H), 플루오린(F), 탄소(C)로 이루어져 오존층 파괴 효과가 없는 HFCs 냉매를 사용합니다만, 여전히 냉매는 이산화탄소보다 수천 배 이상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액체 냉매는 기체 상으로 증발될 공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냉각 시스템의 소형화에 제약을 겁니다. 요즘처럼 크기가 작은 전자 장비 안에 냉각 장치를 집어넣기 까다롭게 만들죠.
고체 냉매의 딱딱한 변화
공학자들은 이러한 액체 냉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체 물질을 탐색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그중에서도 고체 냉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체 냉매는 공통적으로 기체와 액체 대신 고체만을 냉매로 사용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습니다. 고체 냉매는 기체나 액체로의 상태 변화를 거치지 않고, 오직 고체 상태로만 냉각 효과를 유도하기 때문에 사용 중 냉매가 대기 중으로 누출될 위험이 없기 때문이죠. 이뿐만 아니라 기체로 변환될 필요가 없어 시스템 소형화에 유리합니다.
고체 냉매 냉각의 핵심적인 원리는 액체-기체 냉매와 같습니다.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상 변이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죠. 다만 고체 냉매는 내부의 미세 구조가 바뀌는 상 변화를 겪을 뿐, 여전히 고체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고체라고 다 같은 상이 아닙니다. 확연히 구분되는 성질을 가진다면, 같은 고체일지라도 다른 상으로 간주될 수 있죠. 이는 조금 어려운 개념이지만, 뒤에 제시될 예시들을 함께 보며 이해해 봅시다!

자성 고체 냉매 - 자석으로 차갑게!
자성 고체 냉매는 자기장을 이용해 냉각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 독특한 이유는 재료의 무질서도를 제어하기 위해 외부 자기장으로 물질 속 작은 자석들의 배열을 바꾸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재료는 원래 상온 상압에서 [그림3]의 1번과 같이 자성을 띠지 않는 상태(paramagnetic)지만, 외부에서 자기장을 가하면 자성을 띠는 2번 상태(ferromagnetic)로 상이 바뀝니다. 위 주황색 단계와 같이 화살표로 표현되는 자석의 방향이 하나로 정렬되며 무질서도가 감소하죠. 이에 바깥으로 열이 방출되며 주변의 온도가 상승합니다. 이제 외부에서 물질을 식혀 3번 회색 그림과 같이 만들고 최종적으로 자기장을 제거하면 4번 파란색 그림과 같이 화살표들의 방향이 무작위로 배열되며 주변의 열을 흡수하게 됩니다. 즉, 주변의 온도가 내려갑니다.
이때 파란색 상태로 만드는 과정은 냉각을 원하는 곳에서, 주황색 상태로 만드는 과정은 외부에서 진행한다면, 에어컨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성 말고 다른 방식으로 내부 구조를 바꿀 순 없을까요?

탄성 고체 냉매 - 눌러서 차갑게!
탄성 고체 냉매는 기계적인 압력을 이용해 고체 냉매의 무질서도를 조절하는 방법입니다. 대표적으로 플라스틱 결정으로 구성된 MAPI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이 물질은 외부 압력이 높을 때는 [그림4]의 왼쪽 상단과 같이 결정 속 입자들이 자기 자리를 유지하며 비교적 가만히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이 일정 이하로 낮아지면 오른쪽 하단과 같이 각 입자가 고체 상태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진동하고, 회전하며 비교적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입니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죠. 따라서 외부 압력을 낮추면 주변 온도가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열을 외부로 방출하고 싶다면 반대로 압력을 높이면 됩니다.
현재 고체 냉매 기술은 이론적으로 높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실제 냉각 효율이나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는 아직 기존의 '액체-기체' 기반 냉매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냉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물질 설계와 시스템 최적화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죠. 특히 고체 상태이기 때문에 열 교환 효율이 떨어지고, 반복 사용에 따른 소재의 피로도 증가도 개선이 필요한 점으로 지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존보다 훨씬 큰 냉각 효과를 나타내는 고체 물질을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죠. 기후 위기와 함께 고체 냉매의 환경적 이점이 부각되면서 산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스타트업 '파스칼(Pascal)'이 고체 냉매와 물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냉각 기술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사례는 이 기술이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 유망 분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질의 변화를 탐구하다 보면 무더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제의 돌파구를 물질에 대한 지식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재료공학의 매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번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공대상상 기사를 읽으며 독자 여러분도 공학과 한 발자국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 Sun, Y., An, S., Gao, Y., Yu, Z., Yuan, X., Ma, Z., ... & Wang, C. (2025). Materials with barocaloric effect for solid-state refrigeration. Journal of Materials Chemistry A
그림 출처
- 그림1. Tankbig. (n.d.). Diagram split AC. https://www.tankbig.com/split-air-conditioner-diagram/diagram-split-ac/
- 그림2. OpenAI. (2025). Image generated by ChatGPT. https://chat.openai.com/
- 그림3. CaloriCool. (n.d.). Magnetocaloric effect. https://www.caloricool.org/area/magnetocaloric-effect
- 그림4. Escorihuela-Sayalero, C., Pardo, L. C., Romanini, M., Obrecht, N., Loehlé, S., Lloveras, P., ... & Cazorla, C. (2024). Prediction and understanding of barocaloric effects in orientationally disordered materials from molecular dynamics simulations. npj Computational Materials, 10(1), 13.